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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 칼럼] 글쓰기와 인권 감수성
[박세호 칼럼] 글쓰기와 인권 감수성
  • 박세호 기자
  • 승인 2022.07.28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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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지자체의 마을운동과 복지문제를 담당하는 산하기관(단체)에서 발행하는 정책 간행물의 시민기자를 할 때 일이다. 어느 지역의 장애인 부모 자조모임을 조직한 활동가 한 분을 인터뷰했다. 책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봉사활동을 장려하고 홍보하는 내용이기에, 꼭 그분의 활동내용이 들어가야 했다. 워낙 바쁘셔서 두 번 만날 때, 매번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그분의 겪어온 내력을 보면 참 어려운 과정을 밟아왔다. 오래 전 발달장애 아동의 어머니로서 처음에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다가 똑 같은 문제를 가진 지역 내 다섯 가정을 연결한 모임을 시작하여, 지금은 구청과 시청에서 인정을 받는 공개적인 큰 모임이 되었다.

아들도 많이 장성하였다. 집행부를 맡고 있는 분들 (부모님들)을 도와서 활동을 하는 한 편, 학교에 등교하는 것처럼 아들을 복지관에 데려다 주고 계속 신경을 쓴다. 자녀들이 모두 함께하는 이 모임은 매월 교육과 행사와 원거리 여행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들을 정례화해, 짜인 일정대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려고 직장에 나가신다. 이 세 가지 일을 다 하느라 늘 바빴다. 나도 발달장애아 가정의 일상이 어떨 것이라는 것은 미리 알아보기도 했고 조금 아는 상식도 있었으나, 그 분은 막상 본인의 어려운 이야기는 그리 하지 않았다.

주로 모임에서의 행사와 그 진행과정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사회적인 지원사항 등 장애인 모임의 전체적인 이야기로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겪는 고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일반적인 신체 장애인들과도 달리, 아들이 커서 성인이 되어도 미숙아처럼 계속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 

노인과 신체 불편한 사람들에겐 건널목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 박세호
노인과 신체 불편한 사람들에겐 건널목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 박세호

사회가 산업화되고 국부가 쌓여가면서, 이들 대상자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도 고도 선진국 수준에 맞게 대폭 확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취재기자인 나의 입장에서 어깨너머로 보아도 마음이 아팠다. 앞만 보고 달리며 가난 속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도 바빴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기자도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는 방안이 없나 늘 살피게 된다.

내 주위 사람들은 기부나 봉사활동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분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어떤 선한 여론형성 과정에 참여한다든가 하는 일도 엄두를 못 냈다. 그러한 마음의 자괴감이 컸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점점 더 타인의 고통과 어려운 처지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음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은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그 책자 발간에 종사하는 기자들을 위해 책자 발행처에서는 유명 글쓰기 강사를 초빙해 연마할 기회를 주었고, 특별히 하루는 인권감수성에 관한 전문가 특별 강좌 시간도 가졌다.

나는 속으로 ‘우리도 듣고 배운 것이 있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는데, 인권감수성에 대해서 또 더 많이 배워야하나?’ 라고 회의적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비교적 옛날 사람인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 많았고, 최근 추세에 맞춘 공감능력과 사회적 책임감 등에 관해서 정말 많이 깨닫게 되고 배웠다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마음 Ⓒ 박세호
꽃과 같이 아름다운 마음 Ⓒ 박세호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유명 정치인들이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다.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개념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외모나 신체의 부분을 비하해서 발언하는 일이 과거에는 통용되었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마이크 앞 즉석 발언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에 비해, 글을 쓰는 경우에는 한 템포 늦게 작문을 하고 수정을 하고 검수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위험도가 떨어진다고는 하나 여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 여기저기 수강신청을 하곤 하는데, 내가 배웠던 그 인권감수성 교육 정도의 커리큘럼을 포함시킨 곳이 별로 없다. 말하고 글쓰기에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 남녀노소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혀야 하지만, 동시에 인권과 복지정책의 기초를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시청 옆 지하철 2호선 출구 쪽으로 가다가 과거 인권위원회 건물 앞(ㅂ 은행 앞) 보도위에 청동 판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눌렀다. 서울 시내에 역사표지판이나 유명 문인 자취 등을 읽어보고 과거에 여러 번 글을 썼다. 그런 표지판이겠지 했는데, 장애인 운동가의 인권투쟁 현장(Site of Disability Activists’ Human Right Activism)이라는 글귀였다. ‘2011년 우동민 열사 등이 투쟁한 곳’이라는 설명도 있다. 시간은 좀 흘렀지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다 변을 당했다는 당시의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나 인권감수성에 대한 교육이 더욱 증가돼야 하고, 공감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이렇게 기초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하는 진지한 그런 부분들이 있다.

정치인들이 말실수를 하는 해프닝 그 자체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 분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법률안을 통과시키고 예산을 확충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정책당국자나 정치가들은 너무나 중요한 사람들이다.

꼭 어떤 이슈가 표면화되기 이전부터 자료의 제공과 대화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구 인권인원회 건물 앞의 표지판 Ⓒ 박세호
구 인권인원회 건물 앞의 표지판 Ⓒ 박세호

그중에서도 장애자 문제와 같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 상층부와 고위 당국자들로부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 까지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당면한 현실 방안 못지않게 꼭 이뤄야 할 핵심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